✎ 작가 : rlaalsrbb
★ 평점 : 9.5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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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나만 기억하는 그 순간
퇴근 후, 이상원이 따라 나왔다.
말없이, 엘리베이터 앞에.
사람들 다 빠져나간 복도에서,
그가 조용히 말했다.
“잠깐 얘기할 수 있어요?”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게 실수였다.
회의실 문이 닫히고
공기는 금방 무거워졌다.
“지금 나, 불편하죠?”
그의 질문은 너무 단순했는데
나는 너무 오래 참았던 것 같다.
“불편하죠.
불편하고… 어색하고…
왜 자꾸 그렇게 구는지도 모르겠고.”
숨이 헛돌았다.
“그때는 그렇게 내보내더니
지금은 왜, 자꾸 다정한 척하는데요?”
그가 무언가 말하려다 멈췄다.
나도 안 멈췄다.
“그때 나—팀장님이 말 한 마디도 안 해줘서
진짜 바닥까지 무너졌어요.
그 한 문장이
‘이 사람은 나를 아무 생각 없이 자른 거구나’
그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그는 잠깐 나를 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나, 기억나요.
…당신이 퇴사하던 날.”
그 목소리는
지금까지 들었던 어떤 말보다 낮고 조용했다.
2년 전,
야근 중이던 사무실.
그는 내 자리 앞에 조용히 와서 말했다.
“오늘은 그만해요.”
나는 책상에 얼굴을 파묻은 채 대답했다.
“괜찮아요.”
그는 한참을 말이 없었다.
그러곤 조용히 돌아섰다.
아무 말 없이.
아무 표정 없이.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사람은, 그날도 등을 보이며 나를 떠났다.
“내가 그날 아무 말도 못 한 건…”
이상원이 말했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당신한텐 위선처럼 들릴 것 같아서요.”
그 말이 맞았다.
그리고 너무 늦었다.
그리고 너무 아팠다.
나는 한 발 물러서며 말했다.
“그럼 이제라도 말해봐요.
그때 나한테 뭐라고 했어야 했는지.”
그는 날 똑바로 봤다.
“가지 말아요.
그랬어야 했죠.”
딱.
그 한 마디로
나는 또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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