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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몽오
★ 평점 : 5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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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부 연습이 끝나면 늘 맨 마지막에 남는 애가 있다. 무대 조명 끄고, 소품 제자리에 정리하고, 밀려 있던 대본까지 차곡차곡 접어두는 조용한 후배.
한동민.
딱히 붙임성 있는 성격도 아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늘 그런 일을 도맡아 한다. 다른 후배들은 연습 끝나면 옷 갈아입느라 바쁘고, 선배들은 다음 스케줄 확인하느라 우왕좌왕하는데, 그 애는 언제나 마지막까지 아무 말 없이 남아 있는다.
하도 존재감 없이 돌아다녀서, 초반엔 연출부 애인 줄 알았다. 근데 어느 날부터 배우 파트에 들어왔고, 그때부터 나한테 이상하게 말을 많이 붙였다.
···정확히 말하면, 지적을 많이 했다.
“선배, 아까 그 대사 박자 좀 밀렸어요.”
첫 마디가 그거였다.
다짜고짜, 아무 감정도 없이, 정확하게.
그날 연습 때 딱 한 번 대사를 늦게 던졌던 게 맞긴 했다. 감정선이 꼬여서 머뭇하다 나간 대사였는데, 그걸 굳이 끝나고 지적해왔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는데, 썩 좋지도 않았다. 그 애는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말끝을 잘랐다.
“그 장면, 표정은 괜찮았어요. 마지막에 눈 피한 거.”
묘하게 신경 쓰이게 말하고는, 그게 전부라는 듯 조용히 책상을 정리했다. 나는 뭐라 반응도 못 하고 가방끈만 꽉 잡았다. 지적 같기도, 칭찬 같기도, 그저 관찰 같기도 한 말. 그 애는 꼭 그런 식이다. 감정 없는 말투로 꼭 필요한 말만 내뱉고 사라진다.
근데 이상하게도, 그 애 말은 자꾸 생각난다.
그날 이후, 연습 전 조명을 미리 켜놓거나, 히터 온도를 2도쯤 높이는 일이 잦아졌다. 처음엔 우연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따로 부탁한 적 없는 걸 매번 누군가 먼저 해놨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실수하는 걸 가장 먼저 눈치채는 애,
내가 추워 보일 때 제일 먼저 손 넣는 애,
그게 매번 한동민이었다는 걸.
“선배 발목 좀 불편해 보이던데, 괜찮아요?”
하루는 그런 말도 했다. 연습 끝나고 돌아가려던 길목, 정수기 앞에서 마주쳤는데 내가 물 뜨는 걸 보고 말도 없이 컵 하나 더 꺼내더니, 그렇게 묻더라.
앞뒤 없는 질문이었다. 별로 심하게 다친 것도 아니었고, 별로 티도 안 났을 텐데. 그걸 알아챘다는 게 더 이상했다.
“봤어?”
내가 묻자, 그 애는 아주 짧게만 대답했다.
“그냥 뭐.”
그리고 말없이 내 컵에 물을 따라주고 나가버렸다. 그날 이후, 왼쪽 발목을 무의식적으로 감싸게 됐다. 누가 보고 있을까 봐서가 아니라, 그 애가 봤다는 걸 이제서야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조용한 애였다.
연습 중에도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근데 내가 대사를 놓치거나, 감정이 어긋날 때는 꼭 시선이 느껴졌다. 무대 위에서도, 연습실 한켠에서도, 늘 멀리서 지켜보는 기분. 그걸 의식하지 않기란, 꽤 어렵다.
“선배.”
다음 연습 날, 그 애가 먼저 나를 불렀다.
끝나고 돌아가려던 복도에서.
“그 장면. 전보다 낫던데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장면이 뭔지, 구체적으로 말해준 적 없는데 그 애는 알고 있었다.
“손가락 떨리던 거. 덜 흔들렸어요.”
···아, 그걸 봤구나.
불안해서 잡고 있던 종이 소품을 계속 만지작거렸었는데. 그걸 굳이 기억하고 있었다.
“관찰력 좋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 애는 천천히 시선을 거두며 중얼거렸다.
“그런 거 잘 보여요. 선배는 티가 잘 나는 편이라.”
이상한 말이었다. 근데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들키고도 안심한 것 같은 이상한 마음이었다.
그날 이후로, 그 애가 왜 배우 파트에 들어왔는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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