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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서우주
★ 평점 : 10 점
⚇ 조회수 : 1,28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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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소문.
흠칫, 하면 비가 쏟아내릴 것만 같은 여름이 올 때면
어느 한 학교에서는, 매일 밤마다 한 남학생이 보이곤 한다고 한다.
다름 아닌 음악실에서,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듯이 말이다.
그 학생과 눈이 마주친 학생은, 홀린 듯이 음악실 안으로 들어가 다음날이 되어 다른 학생들이 찾아올 때까지 피아노를 연주한다고 전해져있다.
***
"으아, 지각이다!"
아침부터 정신없게 방 안을 헤집으며 허둥지둥 출근 준비를 하는 저 사람은 바로 나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구나, 하겠지만 사실 2년 넘게 한 회사만 다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저러는 거다.
내가 봐도 난 참 아침잠이 많다. 고등학생 때는 내가 이미 지각생 명단에 자동으로 써져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그러지 않게 되었다. 왜 그랬냐면•••. 잠시만, 내가 왜 그랬더라?
"다녀오겠습니다!"
"아침밥은 먹고 가야지!!"
"늦었다고! 나 나간다."
제발 지각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내 두 다리에 간곡히 부탁하며 방을 나섰다. 하지만 그럴 리가. 시계는 벌써 8시 30분을 향하고 있었다. 아뿔싸. 출근까지 30분 걸리는데. 오늘도 지각하면 난 진짜 해고와 함께 한강 다이브 해야 한다고.
그렇게 잘 들리지도 않는 엄마의 잔소리를 속으로 생각한 채 죄송해요를 백 번 천 번 반복하며 집을 나섰다. 아, 신발 잘못 신어서 다시 들어갔다는것은 내 기본 옵션인것을.
***
"아니, 그래서 신발 다시 갈아 신고 왔다니까? 나도 운동화가 너무 익숙해졌나 봐."
"아니면 여사원들에게 구두만 요구하는 이 미친 회사 때문일지도 몰라. 망할 회사, 진짜 때려치워야지."
"너 그 말 지금 1년 6개월째야. 2년이나 다녔는데 아직도 모르겠어? 너 여기 평생 다닌다고."
"네가 들어오고 싶어서 들어온 거 아니야? 음악 쪽 하고 싶었던 거 아니었나."
이게 무슨 대화이냐. 그냥 2년 동안 쌓였던 불만을 토로하는 지극히 정상인 평범한 직장인들의 대화이다. 퇴사한다는 말만 입을 열면 나오는, 정상인.
솔직히 말해서 다들 직장 들어오면 나처럼 될 거다. 매일 아침 회사 앞 카페에서 받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내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뭔 말도 안 되는 아재 개 그 풍기는 옆자리 동료나, 성희롱을 서슴지 않는 팀장을 끼고 있는 곳이라면 말이다.
옆 부서인 친구 두 명과 꿀같은 점심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내가 여기 원해서 들어왔다고 생각하는듯하다. 아니, 누가 도대체 첫 입사를 원하는 곳으로 가냐고. 자기들은 그랬나 보지? 참 나. 부럽다.
아무튼, 내가 왜 이 회사를 지원했나 면, •••. 어? 그러게. 내가 여기 왜 지원했더라. 난 음악에 재능도 없고, 관심도 없다. 그런데 왜 내가 여기를 ㆍㆍㆍ. 참, 나 기억력도 없구나. 불쌍해.
"아 참. 너희 그 소식 들었어? 우리 학교, 귀신 나온대. 개교한지 30년도 안됐는데, 벌써 소문도 나고."
"그러니까. 우리 학교 좀 유명해진 것 같지 않ㅇ, 악!"
"또. 자꾸 헛소리할래? 너 고등학생 때로 돌아가고 싶냐?"
"아니. 그땐 진짜 아니야. 그때 얘 눈치 보느라 죽는 줄 알았다고."
아니 왜 얘네들은 당사자 앞에서 대놓고 뒷담을 까네? 아니, 앞담이려나. 근데 내 눈치를 본다고...? 나 무슨 일 있었나.
"나? 내 눈치를 왜 보는데?"
"... 너 진짜 기억 안 나? 우리 그때 박-."
"너 자꾸 그럴래? 윤아 앞에서 그 애 이름 꺼내지 말라고."
"그건 그렇고, 너 진짜 기억 안 나? 우리 고등학생 때."
사실 고등학교 때의 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껏해야 파릇파릇한 1학년 정도? 2학년부터는 기억이 없다. 내가 고등학교 때 어땠더라. 혹시 양아치였나? 하지만 1학년 때는 평범했다. 조금 많이 지각했다는 것만 빼면.
"응, 진짜 안 나.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
둘은 정말 드라마의 각본을 짠 듯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내가 무슨 잘못했나? 설마 진짜 양아치였나? 막 담배 피우고 클럽 가고 그랬나.
"윤아야. 혹시 고등학교 때 썼던 물건들 아직 남아있어?"
"졸업앨범 말고, 네가 그때 썼던 일기장 같은 거 있잖아."
"어... 아직 남아있을 거야."
"그거, 오늘 찾아서 한번 봐볼래? 그게 아마 네 기억을 찾아줄지도 몰라."
"야, 그건 그 아이가 있을 때 썼던 거잖아. 윤아 또 상처받게 할 거야?"
"그럼 평생 모르는 채로 살게? 윤아도 이제 알아야지."
나는 일기 같은 거 써본 적이 없다. 아, 일기도 2학년 때부터 썼었나. 근데 나 일기 같은 거 쓰는 성격 아닌데. 일단 집에 가서 확인해 보기로 했다.
***
"일기장이... 어, 찾았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던지고 오늘 반나절 동안 계속 궁금했던 고등학교 때의 추억이 담겨있는 상자를 꺼냈다. 그 상자에는 ' 다시 상처받기 싫으면 열어보지 마. ' 라고 적혀있었다. 내가 쓴 것 같은데, 이러면 갑자기 꺼내기 두려워진다고.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나 민윤아가 아니지. 바로 상자를 열었다. 안에 들어있는 건 졸업앨범과 그때 사용했던 필기도구, 책 모서리가 닳도록 보았던 낡은 공책과 교과서. 친구들과 함께 찍은 스티커 사진, 일기장과 의문의 USB였다.
마치 데O노트에서 나올법한 담백한 노트였다. 친구들이 한 낙서와 스티커가 없는걸 보면, 내가 이 노트를 어지간히도 소중하게 여겼나 보다.
일기장 앞장에는 내가 쓴 것처럼 보이는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었다. 마치 눈물을 꾹꾹 참으며 쓴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참지 못했던 것일까. 눈물자국이 남아있었다. 과거의 내가 눈물까지 참으며 나에게 전달하려 했던 메시지는
' 이것만은 열지 마. 너, 후회하게 될 거야. 그 아이만은 제발 기억하지 않기를. '
이었다. 과거의 나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렇고. 도대체 그 아이는 누구일까. 그리고 나에게 그 아이는 어떤 존재였길래 그 아이를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났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일기장을 열어보았다. 그러니 툭-. 하고 사진처럼 보이는 물건이 일기장 안에서 바닥으로 떨어졌고, 나는 무심결에 그 물건을 주웠다. 그 때, 바닥으로 떨어진 물건처럼, 내 눈물도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미안해. 지금에서야 기억해서 정말, 정말 미안해."
예상하지 못했던 물건이었다. 아니, 나 빼고 모두가 예상했으려나. 그 아이의 사진이었다. 내가 절대로 잊으면 안 되는, 그 아이가. 사진 속에 아름답게 저장되어 있었다.
내가 잊었으면 안 되었다. 이런 상자에 꽁꽁 감춰두고 혹시 모를 호기심에 열 것을 방지하여 경고문을 쓰는 것도 안되었다. 그 순간이 너무 고통스러워 기억을 잃는 것도 안되었다. 평생을 기억해야 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 고통을 안고 가야 했다.
하지만 어떡하나. 이미 그 아이는 내 곁에 없는 것을. 이 사진의 뒤편에 쓰여있는 문구처럼 되기를 바랐다. 그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너는 알까, 이렇게 환하게 웃고 있는 네 사진을, 눈물을 꾹 참은 채 도망치듯이 일기장에 넣었던 그때의 내 감정이, 슬픔에 잠겨 사실을 부정하듯이 졸업앨범에 네 사진을 꾸역꾸역 붙였던 감정도, 지금에서야 뒤늦게 떠오른 지금의 감정 그 모든 것이, 너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아마 너는 지금 이 사진이 찍힌 그때의 행복만을 알고 있었겠지. 너는 그때에서 멈추어있으니. 나만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었으니. 너를 잊어버린 채.
사진 뒤에 쓰여있는 네가 쓴 글귀와 네 글씨체는, 나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네 마음이 잘 드러나는 글귀라서. 그 마음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어서. 네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다시는 네가 내 옆에 없어서.
나의 아름다운 순간에는 항상 네가 내 곁에 있기를.
- 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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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팬플러스Fan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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