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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좌표
★ 평점 : 9.83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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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
"······."
"··· 음···."
"······."
바람이 불어 하얀 커튼이 살랑거렸다. 그 때문에 커튼 사이로 햇빛이 방 안에 들어왔고, 눈이 부셔 잠에서 깼을 땐 그토록 하얬던 커튼보다 더 새하얀 윤기 씨가 내 옆에서 턱을 괴고 누워있었다.
··· 아악!!!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놀란 난 소리를 지르며 침대에서 떨어졌다. 그런데 쿵! 하고 세게 떨어진 날 일으켜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 윤기 씨에 더 민망해져서 재빨리 바닥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내가 아직도 여기에 있는 건지, 그럼 어제 그렇게 윤기 씨와 잔 건지.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왜 얼굴이 붉어져."
한창 상황파악을 하고 있을 때 윤기 씨가 나에게 왜 얼굴이 붉어지냐 물었다. 근데 그 이유는 그쪽이 더 잘 알지 않나. 그럴 만도 한 게, 어제의 마지막 기억인 윤기 씨의 엉큼하고 음흉한 말 때문이었기에 이러는 거니까. 그렇다면 진짜 내가 윤기 씨랑 잔 건가? 그것도 처음 보는 남자랑?
의문스러운 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윤기 씨가 더 원망스러웠다.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윤기 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어제 술을 마셨으니 해장을 해야 할 것 아니냐며 유유히 방에서 나갔다. 너무나도 당당한 그의 태도에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 옷차림은 어제와 똑같았다. 어느 것 하나 달라진 게 없었기 때문에 의심이 조금 잦아들긴 했지만 그래도 맘을 놓을 순 없었다. 일단 윤기 씨를 따라 주방으로 향했다. 앉으라는 듯 턱짓하는 윤기 씨에 의자를 뒤로 빼 다소 높은 의자에 착석했다.
금방 맛있는 냄새가 폴폴 나기 시작했다. 수저를 놓고 그냥 기다리기만 하고 있자니 이 상황이 너무 어색해서 괜시리 농담을 던지기보단 궁금한 걸 물어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근데··· 우리 어제
무슨 일.. 없었죠?"
"화끈했지."
"··· 네?"
"너랑 나 둘 다. 특히
네가 적극적이던데."
윤기 씨의 말에 머리가 띵했다. 아니··· 진짜? 진짜로···? 내 아름다운 첫경험을 저 사람이 가져가버렸다고···?
마지막 결정타에 난 힘없이 식탁으로 쓰러졌다. 그런 나를 무시하고 선지가 가득한 해장국을 내민 윤기 씨는 이내 의자에 앉았다. 난 그런 윤기 씨에 쭈글쭈글하게 국물을 호로록 들이켰다. 생각해보니까 술 때문에 필름이 끊겼던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내 기억엔 정말 아무 일도 없었지만. 근데 이 사람이 화끈하게··· 막··· 그랬다니까 억울한데 따지지는 못 하겠고··· 그냥 미쳐버릴 것 같았다.
"농담인데 뭘 그렇게 시무룩해,
너한테 뭔 짓 안 한다고 약속했잖아."
"한다면서요···."
"못 들은 걸로 하라니까."
그래서 진짜 아무 일 없었냐고 계속해서 물어보니 윤기 씨는 짜증 섞인 말투로 아 진짜 그냥 잠만 잤다니까. 왜, 있었던 일로 퉁치고 싶어서 계속 물어보는 거야? 하고 말했다.
그래서 기분이 그냥 한 방에 좋아졌다. 가장 궁금한 건 처리했으니 다른 건 이따 물어보고 일단 밥부터 먹기로 했다. 어제 너무 마셔서 그런가 속이 아직도 울렁거렸기 때문에. 이제 술 좀 줄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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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다 먹고 난 뒤 윤기 씨가 옷을 던져주길래 어제 못 씻었으니 씻으라는 뜻 같아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개운하게 씻고 나왔는데 머리를 아직 못 말려서 물이 뚝뚝 떨어지니 그 모습을 본 윤기 씨는 왜인지 귀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손수 머리를 말려주겠다길래 괜찮다고 사양했는데 눈빛이 엄청 매섭길래 쭈구리 돼서 얼른 입 닫고 화장대 앞 의자에 앉았다. 드라이기 소리가 그렇게 크지 않길래 말해도 잘 들릴 것 같아서 선지가 집에 왜 이렇게 많냐고 물어봤다.
내 물음에 윤기 씨는 냉장고에 선지가 10kg 넘게 내부 반이나 차지한대서 농담도 할 줄 아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근데 뭔 농담을 그런 걸로··· 아무래도 드립 엄청 못 치는 성격인 것 같았다.
어느 새 머리카락이 모두 말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근데 갑자기 윤기 씨가 냉장고 안을 보여주더니 선지 한 봉지를 꺼내 흔들었다. 아니 그 말이 진짜였다고? 안을 더 보니까 다른 음식은 조금이고 선지만 가득했다. 식성이 참··· 특이하네. 뭔 소 피가 이렇게 많냐고 피만 먹고 사냐 물어봤다니 그렇다네.
"아, 장난하지 말고요."
"장난 아닌데. 진짜야, 나 피
먹고 살아. 계속 피만
먹는 건 아니어도."
"재미 없거든요, 농담 되게 못한다."
"농담 아니에요. 저 말 진짜 맞으니까 믿어요."
"뭐야. 너 언제 왔냐."
윤기 씨와 말을 주고받고 있을 때 갑자기 어떤 남자 한 명이 나타나 윤기 씨의 말이 사실이라고 했다. 어디서 온 건진 몰라도 여기 이 사람들 진짜 이상한 것 같았다. 아니 그냥 이상하다.
내가 그냥 아무 미동도 없이 눈만 깜빡거리고 있자 그 남자는 끼고 있던 까만 가죽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제 이름은 전정국이에요. 이 탑의 관리자이자, 민윤기 씨의 매니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하며.
"눈치 못 채신 것 같아서 말씀드려요.
민윤기 씨는 흡혈귀, 소위 말해서 뱀파이어입니다."
"흡혈귀라고 하지 말라 했잖아, 괴물 같아 보인다고."
"믿으시는 데엔 시간이 걸릴 거라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으니 천천히 적응하세요."
도통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뭔가 이해가 가긴 했다. 보통 사람이라고 하기엔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에,어제 달리는 것도 엄청나게 빨랐고, 선지만 가득한 것도 이상하고 무엇보다 윤기 씨 특유의 그 분위기가 신비로웠다. 근데 그렇다고 하기엔 뱀파이어라고 하면 너무 상상 속의 요물 아닌가.
"전 도저히··· 못 믿겠어요.
어떻게 뱀파이어가···."
"그럼 생각해 보세요. 이 대한민국에, 이런 탑이 있다는 걸요.
애초부터 그것부터가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설명은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은데."
"······."
"그리고 김여주 씨가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
바로 민윤기 씨의 신부가 되기 위함입니다.
안타깝지만 김여주 씨는 이제부터 이곳에서 생활하게 될 겁니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니 되도록이면 빠르게 받아들이시길."
그때 난 알아차렸어야 했다. 이놈들은 정말 제대로 미쳤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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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팬플러스Fan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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