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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여느날
★ 평점 : 10 점
⚇ 조회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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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례 전날의 시간은 사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 사실을 몸소 겪어본 적 있는 이는 말이 적어지기 마련이다.
나는 죽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죽기 전의 내 몸 속에 빙의한 듯, 모든 것이 낯설도록 생생했다. 이건 새로운 삶이 아니라, 분명히 죽음 바로 직전으로의 회귀였다.
가슴께를 조여오는 겹겹의 속저고리를 젖히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툇마루 너머로 볕이 흘렀다. 햇빛은 분명 따뜻했으나 피부 위로 내려앉는 기척은 싸늘했고, 심장은 더디게 뛰고 있었다. 이방의 공기부터가 달랐다. 아니, 달라졌다고 느끼는 쪽은 어쩌면 나 혼자일지도 모른다.
거울을 본다. 가느다란 얼굴 선과 또렷한 이목구비. 피곤함으로 가라앉은 눈두덩 위로 선홍빛 연지가 얹혀 있다. 이 얼굴은 틀림없이 내 것이지만, 지금의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 죽음을 겪고 다시 깨어난 자는, 다시 살아난 게 아니다. 그건 다른 이름의 존재다.
“아가씨, 깨어나셨습니까!”
문간이 덜컥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나인 하나가 단박에 달려와 내 어깨 위로 천을 올리고 이마에 손을 얹는다. 체온을 재는 손길이 사뭇 다급했다. 손길은 분명 따뜻했는데, 어쩐지 목덜미가 서늘해진다.
“열은 없으신 듯합니다. 기운이 없으시면 드실 거라도 챙겨드릴까요?”
“…괜찮아. 물만 조금.”
대답을 하며 입을 여는 감각이 낯설었다. 방금 전까지는 죽어 있었으니까. 입술 안쪽이 말라붙은 듯 따끔거렸다. 물을 받아오는 나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이불을 털고 일어난다. 가슴께로 한 줌 불안이 차오르지만 그것에 휘둘릴 시간은 없다. 오늘은 내가 죽었던 날의 전날이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면, 내일 나는 또 죽는다.
그렇게 살다 죽는 삶은 이제 그만두기로 했다. 몸을 일으킨 나는 천천히 창문을 열었다. 살짝 들리는 바람 소리, 매화꽃이 흔들리며 땅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 장면을 나는 안다. 전생에서 보았던 마지막 날의 풍경. 소름 돋도록 동일했다.
“아가씨, 도련님께서 오셨습니다.”
잠시 후, 나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도련님. 단 하나의 대상.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았다.
유하민.
전생의 마지막 장면에 남아있던 사람. 내게 등을 돌렸고, 조문도 오지 않았고, 그저 ‘이 혼인은 형벌’이라 말하고 사라졌던 사람. 내 삶의 마지막이 그의 말 한 마디로 정리되어버린 시간.
이제야, 다시 마주할 순간이 왔다.
“드시라 하게.”
조용히 일어서며 말했다. 놀란 듯 눈을 둥그렇게 뜬 나인이 얼른 물러서고, 곧 낮은 발소리 하나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규범처럼 정갈하게 걷는 걸음. 무릎 아래까지 내려온 남색 도포자락이 시야에 담겼다.
내 시선이 천천히 위로 올라간다. 잊을 수 없는 선. 무표정한 얼굴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짙은 눈매, 단정하게 빗어 넘긴 검은 머리카락.
“몸은 좀 어떻습니까.”
딱 한마디. 감정 없는 목소리. 그래, 그랬다. 그가 나를 처음 찾아온 그 날도, 지금 이 한마디 말뿐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전생의 나라면 감히 하지 못했을 선택이었다.
“… 잘 살아 있으니 된 것 아니겠습니까.”
내 말에 유하민의 눈썹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눈빛은 여전히 고요했지만, 그 안에 엷은 파문 하나가 생겨났다. 아주 작은 금이 가듯이.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받으며, 나는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이번 생에서 나는 당신 앞에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가 나를 다시 형벌이라 부를지언정, 나는 더 이상 조용히 죽어줄 생각이 없다. 내가 깨어난 건 우연이 아닐 테니까. 이번엔, 내가 약조를 새로 쓸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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