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플레이브 유하민 빙의글] 붉은 약조 3화

✎ 작가 : 여느날

★ 평점 : 10 점
⚇ 조회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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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공기는 의외로 고요했다. 방문을 여는 소리에 새들이 놀라 날아오를 듯한 침묵 속에서, 나는 혼례 당일의 하루를 맞이하고 있었다. 전생과 똑같은 풍경, 똑같은 기척, 똑같은 사람들이었지만—

 

내가 다르기에,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아가씨, 머리를 올려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머리 손질을 맡은 시녀의 손이 멈칫했다. 나는 거울 속 자신을 마주본 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녀를 꽂는 손길이 천천히 움직였고, 목 뒤로 스치는 냉기가 뒷덜미를 타고 흘렀다. 전생의 나는 이 순간조차 울었다. 두려워서가 아니라, 서럽고 억울해서. 그에게 한마디 따져보지도 못하고, 고작 혼례를 앞둔 신부라는 이유로 고개 숙이며 죽음을 맞이했던 내가 너무 애달파서.

 

하지만 이번 생의 나는 달랐다. 눈물은 말라서 맺히지도 않았다. 애초에 울 이유도, 울 상대도 없었다.

 

예복을 다 갖추고 마루로 걸음을 옮기자, 바람이 살결을 스쳤다. 시녀의 손을 빌지 않고 스스로 걸음을 옮기자 모두가 놀란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 시선들을 느끼며 나는 조용히 마음을 다잡았다. 그들의 시선은 장식에 불과했기에.

 

 

“도련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차례를 알리는 말이 들려왔다. 숨을 고르지 않았다. 준비는 어제 이미 끝났으니. 고개를 끄덕이자 사람들은 익숙하게 길을 비웠다. 유하민이 마루 위를 걸어왔다. 검정과 청색이 절묘하게 배합된 예복, 단단히 묶인 허리띠, 늘 그렇듯 무심한 눈빛. 전생의 그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곧 부부 될 사이에 예가 있으니 잠깐 들렀습니다.”

 

 

그의 말은 정중했다. 하나, 지나치게 정형적이었다. 마치 누군가 가르쳐준 대로 예를 갖춘 사람처럼. 격식을 앞세운 그 말에 나는 가볍게 웃고, 곧바로 받아쳤다.

 

 

“도련님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참 예법에 능하십니다.”

 

 

하민의 눈썹이 보이지 않게 올라갔다. 놀람보단 어딘가 어긋난 퍼즐을 바라보는 눈빛. 말과 태도, 분위기. 지금의 나는, 전생의 내가 아니었다.

 

 

“부인께서는 앓고 난 뒤 말에 거리낌이 없어진 듯합니다.”

“마음을 거두면, 말을 고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무업니까.”

 

 

이건 도발도, 유희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을 뿐이다. 더는 그의 비위를 맞춰야 할 이유도, 맞출 생각도 없었기에. 하민은 짧게 숨을 들이쉬더니 몇 걸음 가까이 다가섰다. 전생에 결코 넘지 않았던 거리였다.

 

 

“전날 병색이 짙다고 들었는데, 아침부터 곧잘 걷고 말을 하시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 병이 마음에서 온 병이라 그런가 봅니다.”

“제게 그런 말, 하고 싶으셨습니까?”

 

 

나는 한참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아주 살짝 기울였다.

 

 

“아마 과거의 이 사람이라면 감히 담지도 못했을 말이겠지요.”

 

 

그의 눈동자가 멈췄다. 그 안에 담긴 무언가가 일그러지는 느낌. 이질감, 낯섦, 혼란. 그리고 아주 얕은 경계.

 

 

“변했습니다. 많은 것이.”

“이 사람이 전보다 더 거슬리게 군다는 말을 그리 하시는 겁니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우리 사이를 길게 채웠다. 그 끝에서야, 그는 아주 낮게, 느리게 입을 열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웃지 않았다. 고개만 조용히 끄덕였다.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지금 이 사람은,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실이 이 관계를 어떻게 뒤흔들게 될지—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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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 끝난 뒤, 사람들은 제 자리를 찾아 흩어졌다. 그는 마지막까지 나를 보며 남아 있었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말보다 더 확실한 신호였다. 이제 그는 나를 궁금해하고 있다. 낯설어하고 있다. 전생의 나로선 도달하지 못한 첫 번째 고비. 나는 그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그의 내면을 무너뜨릴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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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밤은 유독 고요했다.

 

불이 꺼진 혼례방 안, 창호 너머로 스며든 달빛이 방바닥을 따라 길게 누워 있었다. 등불 하나 없이 어둠을 받아들이는 공간은 낯설도록 정적이었고, 그 안에서 나는 조용히 숨을 죽이고 앉아 있었다. 전생의 나는 이르지 못했던 이 밤. 모든 것이 그때와 닮아 있었지만—지금 나는 살아 있었다. 마치 한 번도 죽음에 닿지 않았다는 듯.

 

문틈으로 인기척이 들려왔다. 일정한 걸음, 조심스레 닿는 문고리. 문이 열리는 소리마저 조용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문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낮고 단정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시선만 문 쪽으로 향했다. 곧 하민이 모습을 드러냈다. 긴 예복을 갈아입은 그는, 여느 때보다 단정하면서도 느슨해 보였다. 문턱에 선 하민은 한 걸음 물러선 채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까지 침묵을 지켰다. 마치 거리를 두는 것이 예라는 듯이.

 

 

"불편하신 건 없었습니까."

 

 

형식적인 안부였다. 나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불편을 느낄 만큼 여유롭지 못했습니다.”

 

 

그가 시선을 내 쪽에 머물렀다. 눈빛에 짙은 달빛이 얹혀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 또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련님께서 이 밤에 찾아오신 뜻을 여쭙는 것이 예일는지요."

 

 

내 말에 그의 눈매가 잠시 흔들렸다. 놀람이라기보다, 익숙한 틀에서 벗어난 말투를 짚어내는 반응이었다. 곧 그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첫날밤입니다. 함께 밤을 보내는 것이 예라 하여."

 

 

그는 방 안으로 몇 걸음 더 들어왔다. 단단하고 조심스러운 발소리. 나는 그대로 앉은 채 시선을 맞췄다.

 

 

"그렇다면 도련님께선 오늘, 예를 지키러 오신 겁니까."

"그렇다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이 사람은, 형식보다 마음이 편한 밤을 택하고 싶습니다."

 

 

그의 걸음이 멈췄다. 나직한 말이 어둠 속에 조용히 퍼졌다. 이번에도 그는 곧바로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주 짧게 숨을 고르고 말했다.

 

 

"다시 보아도 많이 달라지셨습니다."

"도련님께선 별로 달갑지 않을 변화이겠지만요."

 

 

그는 잠시 시선을 내렸다. 무표정한 얼굴 속에서 드물게 감정이 비치는 순간이었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루 가까이 다가서며 말했다.

 

 

"예를 위해 오신 밤이라 하시니, 이 사람 또한 예를 지키겠습니다. 서로 편히 쉴 수 있도록, 방을 나누는 것이 좋겠지요."

 

 

문 앞까지 걸음을 옮겼을 때, 그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발소리 하나 없이 다가와, 내 손등 위에 조용히 손을 얹는다.

 

 

"내가 바랐던 예는, 그런 모양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손은 따뜻했지만, 그 온기를 쉽게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물러서지도 밀어내지도 않은 채 조용히 바라보았다. 긴 정적. 그 속에서 전생의 기억과 현재의 감정이 교차했다. 그가 손을 거두었고, 나는 시선을 문밖으로 돌렸다.

 

 

"편히 쉬십시오, 도련님."

 

 

그는 대꾸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히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이 사라지고, 방 안에 다시 정적이 흘렀다. 이번엔, 침묵마저도 내가 선택한 것이었다. 나는 그 문 앞에 잠시 서 있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안으로 돌아섰다.

 

이 밤은 지나갈 것이다. 전생에 맞이하지 못했던 시간, 그 안에서 나는 조용히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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