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세븐틴 윤정한 빙의글] 쌤 동생이 왜 거기서 나와? 1화

✎ 작가 : jhHedgehog546

★ 평점 : 10 점
⚇ 조회수 : 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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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반장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들어오면서 다짐한 게 있었다면 ‘되도록 평범하게, 최대한 티 안 나게’였다. 시험도 중간쯤, 친구 관계도 무난하게, 발표는 피하고 리더 역할은 더더욱 피하면서 그렇게 고3까지 버텨내고 싶었다. 그런데 그 다짐은 2학기 시작 3일 만에 무너졌다. 그것도 아주 허무하게.

 

 

“진짜 너밖에 없다니까. 도와주는 셈 치고 이번 학기만 맡아줘라.”

 

 

담임쌤은 거의 읍소하듯 내 앞에 앉았다. 나는 교무실 책상에 얌전히 놓인 반장 서류를 바라봤다. 다음 후보도 있다면서, 왜 하필 나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건 “네가 제일 믿음직스럽다”는 말이었다. 그 말이 진심이든, 단지 ‘말 잘 들을 애’라는 뜻이든 간에, 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무기명 투표로 반장이 된 척이라도 해야 했던 거다.

 

반장이 되고 나니 예상보다 일이 많았다. 급식 인원 조사, 행사 안내, 공지 전달, 가끔은 교무실 심부름까지. 수업 시간에 집중하기도 전에 할 일이 머릿속에 쌓였다. 애들은 귀찮은 거 있으면 “반장~” 하면서 넘기기 바빴고, 나는 어쩌다 걸린 사람처럼 하나하나 처리하느라 진이 빠졌다. 제일 웃긴 건 선생님이 갑자기 친근하게 대해오는 거였다. 하라는 일은 계속 늘어나는데 말끝마다 “미안한데~”를 붙이면 그게 사과가 되나 싶었다.

 

그러던 중, 이상하게 자꾸 눈에 띄는 애가 한 명 있었다. 반 친구, 윤정한. 분명 같은 반인데도 1학기 때는 거의 말 한마디 안 섞었다. 딱히 무리를 만들지도 않고, 혼자 있을 때도 어색해 보이지 않는 성격. 뭐랄까, 전반적으로 존재감이 강한 편은 아닌데 또 묘하게 눈에 들어오는 애였다. 단정한 교복, 흐트러짐 없는 태도, 느릿한 말투. 처음엔 관심 없었는데, 반장이 되면서부터 자꾸 마주치게 됐다.

 

첫 대화는 정말 우연이었다. 체육대회 준비 때문에 남은 애들끼리 교실에 남아 청소하던 날, 내가 덜덜 떨며 빗자루를 쥐고 있었는데 윤정한이 조용히 내 앞에 서더니 말했다.

 

 

“그거, 뒤집어져 있어.”

 

 

뭐가? 하고 내려다보니, 빗자루 방향이 거꾸로였다. 민망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제대로 잡고 있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아, 고마워”라고 말하니 윤정한은 대답 없이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그게 첫 대화였다. 어딘가 무뚝뚝하고, 별로 상냥하진 않았지만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며칠 뒤, 담임쌤이 또 나를 불렀다. 무슨 연설문을 전달해달라며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다. “이거, 정한이 좀 챙겨줄래?”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정한이요? 묻기도 전에 쌤이 덧붙였다. “아, 윤정한. 걔 너희 반이잖아. 그 친구가 말은 없지만 참 괜찮아.”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쌤이 특정 학생을 이렇게 따로 언급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날 오후, 나는 봉투를 들고 윤정한 자리로 갔다. “이거, 쌤이 주라는데?” 하고 건넸다. 윤정한은 별 말 없이 받더니, 갑자기 작게 말했다.

 

 

“너, 알아버렸네.”

“…뭘?”

“그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무슨 말인지 한참을 몰랐다. 그런데 윤정한이 들고 있던 봉투에 적힌 이름을 보고야 눈치챘다. 담당 교사 이름이 우리 담임이었다. 그리고 그 이름 옆에는 수신자 이름 대신 ‘동생’이라고 적혀 있었다.

 

 

“…잠깐만. 너 설마—”

 

 

윤정한은 피식 웃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또렷했다.

 

 

“그래. 우리 누나.”

 

 

나는 입을 다물었다. 같은 반인 것도 놀라운데, 담임쌤의 동생이라니. 왜 아무도 몰랐을까. 아니, 왜 말 안 한 걸까. 질문이 머릿속을 도배했지만 입 밖으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윤정한은 내 표정을 가만히 보더니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불편하게 굴진 않을게. 대신 비밀 좀 지켜줘.”

 

 

그 말이 너무 자연스럽고 덤덤해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리만치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비밀 하나가 내 손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비밀 덕분에, 나는 윤정한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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