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나는 또 그 카페로 갔다. 딱히 누가 반겨주는 것도 아닌데, 어제 이후로 그곳이 계속 생각났다. 마신 커피 맛 때문인지, 유자차 티백 때문인지, 아니면 문을 열자마자 들려오던 그 낡은 종소리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어쨌든 나는 다시 그 앞에 서 있었다.
문을 여는 순간, 그가 고양이 털 묻은 수건을 털며 말했다.
“왔네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어제보다 한 톤 낮게 말하는 목소리가 어딘가 조금 더 편해 보였다. 나는 괜히 피식 웃고는
“네, 커피요.”
하고 대답했다. 그는 고개만 살짝 끄덕이고 조용히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어제와 똑같이 도자기 잔에 담긴 커피가 내 앞에 놓였다. 이번에도 말 한마디 없이 잔만 조용히 내려놓고는 돌아섰지만, 그 짧은 순간 눈이 잠깐 마주쳤다. 그 눈빛이 이상하게 따뜻했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어제보다 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곳의 공기는 여전히 조용했고, 그래서 더 편안했다.내 발밑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어제는 멀찍이 앉아 눈만 깜빡이던 치즈색 고양이였다.
도리, 그랬지.
도리는 오늘은 아예 내 신발 앞에 앉더니 앞발을 살짝 내 무릎에 얹었다. 순간 움찔했지만,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다행히 이번엔 도리가 도망치지 않았다.
“간식엔 별 반응 없어요. 사람 눈치 보면서 다가가는 애라.”
그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나는 뒤돌아보며 고개를 들었다. 그는 고양이 사료통을 정리하면서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투는 무뚝뚝했지만, 말의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그 고양이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의 말.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제가 눈치 봐야겠네요.”
그가 고개를 약간 끄덕이더니 다시 돌아섰다. 그건 분명 웃지도 않았고, 대답도 아니었는데, 나름대로의 긍정처럼 느껴졌다.
그가 내 테이블에 조용히 앉았다. 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있었고, 나는 그에게 뭔가 말을 걸어야 하나 망설였다.그런데 그가 먼저 물었다.
“왜 여기에 왔는지, 물어봐도 돼요?”
뜻밖의 질문이었다. 어제는 말도 거의 하지 않았던 그가.
나는 당황했지만 곧 대답했다.
“잠깐… 피하고 싶었어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별다른 말 없이.
그 짧은 끄덕임이 의외로 위로가 됐다. 뭐라 말하지 않아도 ‘그럴 수 있다’는 듯한 분위기.
“잘 온 거예요.”
그는 그렇게 말했고, 나는 그 말을 조용히 가슴에 담았다.그가 안고 있던 고양이가 그의 팔 안에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마치 이곳에 오래 머물렀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나는 괜히 물었다.
“카페 이름은 없어요?”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처음엔 있었는데요. 누가 물어보질 않아서… 그냥 없앤 거예요.”
나는 작게 웃었다.
이름이 없어도 기억에 남는 공간. 말이 없어도 따뜻한 사람. 이곳은 그런 곳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도리와 눈을 맞추는 게 조금 익숙해졌고,
아직 그의 이름을 몰라도, 말보다 행동이 먼저인 그 사람의 조용한 다정함을 조금씩 기다리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