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 rlaalsrbb
★ 평점 : 9.5 점
⚇ 조회수 : 1,4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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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같이 일하기에 너무 조용한 사람
이상원과 단둘이 있는 시간은
대체로 조용하다.
불편해서가 아니라,
그가 조용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데에 한참 걸렸다.
회의가 끝나고, 그는 팀원들에게 간단한 업무 배분을 했고,
내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말을 해야 할 타이밍에 눈을 피했다.
사무실로 돌아온 후, 팀장이 슬쩍 내 자리로 다가왔다.
의자 등받이를 펴고 일어난 순간,
그의 그림자가 내 책상 위로 떨어졌다.
“이번 PPL 브리핑은 내가 같이 들어갈 겁니다.”
조용한 목소리였다.
눈을 맞추지도 않았고, 고개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그저 할 말만 하고 가는 방식.
그가 자주 하던, 그 오래된 태도.
“네. 확인했습니다.”
짧게 대답했지만, 속에서는 계속 쓸데없는 것들이 튀어나왔다.
‘왜 직접 말하러 온 걸까?’
‘그냥 메신저로 보내도 될 일을.’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하면서.’
그는 몇 초쯤 내 앞에 서 있다가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고 돌아갔다.
발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상원은 항상 조용히 다녔다.
그 점만큼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게,
왠지 너무 짜증났다.
회의실로 다시 들어갔다.
이번엔 단둘이었다.
작은 회의실. 한쪽 벽엔 화이트보드, 다른 쪽엔 블라인드 내려진 유리창.
안쪽 의자에 그가 앉아 있었고,
나는 의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앉았다.
노트북을 열며 말을 걸었다.
“이 기획서, 지난 분기 기준으로만 정리했는데… 추가로 넣을 게 있을까요?”
그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말했다.
“있어요.
근데 지금 말하면, 또 감정적이라고 할 것 같아서.”
눈이 마주쳤다.
말도 안 되는 타이밍에.
그는, 분명히 날 보고 있었다.
농담 같은 말투였지만, 말투만 그랬다.
숨이 잠깐 멎는 것 같았다.
이상원은 늘, 꼭 이럴 때
별 뜻 없는 척 말을 흘렸다.
그게 습관이었고, 기술이었고, 나를 무너뜨리는 방식이었다.
나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냥 커서를 움직였다.
그리고 말했다.
“저, 예전보다 감정 조절 잘합니다.”
“응.”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도 그때 들었던 것 같네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는 그때를 끄집어낸다.
다시 꺼내지도 않았던 날들을,
이제 와서 아무렇지 않게 회의 시간에 꺼내는 사람.
“그때,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은 하세요?”
나도 모르게, 말이 나갔다.
이상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파일 하나를 USB에 옮겨 건넸다.
“PPL은 이걸로 정리했어요. 내용 보면 바로 알 거예요.”
그 말에 담긴 건
정리된 기획서인지, 미정리된 감정인지,
나는 더 이상 구분이 가지 않았다.
회의가 끝나고,
회의실 문이 닫히는 찰나, 그가 내 뒤에서 조용히 말했다.
거의 들릴까 말까 한 목소리였다.
“그 말… 기억해요.”
그리고 나는,
또 아무 말도 못 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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