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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내머릿속에지진정
★ 평점 : 10 점
⚇ 조회수 : 3,9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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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집에 돌아왔다.
일주일만에 집에 왔는데도,
내가 어제 나갔다가 오늘 들어온 것처럼
집안이 정돈되어있었다.
마치 시간 여행을 다녀온 듯,
집 안에는 나의 빈자리가 느껴지질 않았다.
소파에 잠시 앉아 한숨 돌린 나는
외투를 걸어놓고 주방으로 왔다.
곧 집에 돌아올 너와 아이들을 위해서
저녁거리를 사왔던 나는 냉장고에 재료들을 넣는다.
다행히 냉장고 안은 나의 빈자리를 말해주듯
김치같은 반찬 통을 제외하고는 깨끗했다.
그래, 여기서라도 나의 빈자리가 느껴져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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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담아두지 말라고 했었지.
상해서 버리더라도
재료가 떨어지지 않게 채워두는 나를
너는 늘 못마땅해 했었어.
그럴만도 했지..
야채가 시들어서 버리기 일쑤였으니까..
“그냥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사면 안되..?”
너는 나에게 부탁했었지..
그런데 나는 뭐가 그렇게 허전한지,
항상 그 자리에 그것들이 없으면 견딜 수가 없었어.
각종 요리 재료들, 어릴때 입던 옷가지..
그동안 써놓은 일기들, 나의 기록들,
내 책과 나의 사소한 물건들..
바보처럼 모두 끌어안고 있었지.
이것들이 사라지면, 이미 조각나 있는 내 삶의 일부가 사라질 것 같았어.
아마 한 가지에 몰입해서 일관된 삶을 살아온 너는
이런 마음을 이해하긴 어려웠겠지..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나의 이 지긋지긋한 소유욕과 저장욕구를
주체하지 못한 것은,
나의 조각난 삶 때문이 아니라,
사실 그냥 내가 애쓰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
내가 나 스스로를 돌봤다면,
나를 사랑하려고 노력했다면,
내가 끌어안고 있던 물건들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살펴봤다면,
중요한 것과 아닌 것들을 구분해서
정리할 수 있었을 텐데.
가지고는 있지만 나는 그것들을 다시 살펴보지 않았어.
내가 보낸 삶에서 널 만난 것을 제외하고는
나의 과거와 삶을 재회하는 것은 고통스러웠거든..
어쩌면 너는 그런 날 돌봐주려고 했던 것 같은데,
내가 자격지심에 그런 것들을 모두 튕겨냈지...
그래서 이젠 내 삶에 유일하게 의미 있었던 널,
나는 잃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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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요리를 하다보니,
저녁때 먹을 찌게가 완성되었다.
있다가 저녁 먹기 직전에 야채만 조금 더 넣어서 마무리하면 될 것 같으니까,
그때 쓸 파를 송송 썰어두자...
통통통
도마 위로 기분좋은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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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네가 좋아하던 돌솥밥이나 해볼까..?
돌솥 여기에 놨었는데.. 그대로 있을까..?
찬장을 열어보니 찬장도 깨끗히 정리가 되어있었다.
나의 마음처럼.. 열기설기 쌓여있던 것들이
늘 정돈 되어있던 너의 모습처럼
한눈에 보기 좋게 정리되어있었다.
여기에는 이태주.. 나의 향기는 사라졌다.
다행히 돌솥은 안 버렸구나...
맨 아랫 선반에 있던 무거운 솥을 꺼낸다.
돌솥을 닦는 김에
좀전에 찌게 끓이느라 썼던 그릇들도 모두 닦는다.
문득 그가 하던 잔소리가 생각난다.
"태주야~ 내가 하는 거 잘 봐바..
이렇게 바로바로 닦아두면 되~ 어렵지 않지..?
정 힘들면 설거지는 내가 해도 되고.. "
어쩜..
어렸을 때부터 오지게 바쁘게 사셨을 분이..
이런 것 까지 다 아는지...
너는 나에게 강요는 하지 않았지만..
왠지 내가 부족한 게 느껴질때마다
나는 부족한 내가 너무 미웠어.
사실 너랑 결혼할 때
너에게 모든 것을 다 맞춰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나였는데..
어느 순간 너의 조언이나 권유들이
나는 자존심이 상해서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
그래서 더 반대로, 더 나쁘게만 행동했던 것 같아.
아이들 핑게로, 내 일을 핑게로,
은퇴하고 평화롭게 지내고 싶어했던 너를
내몰고 괴롭혔지.
이젠 조금씩 정리하며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무 늦은 걸까..?
밥을 앉히고.. 지저분해진 주방을 싹 정리하고..
이제 숨좀 돌려볼까 식탁에 앉았는데,
삑삑삑삑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니가 들어온다.
일주일 만에 보는 건데도
마치 평상시처럼 아침까지 같이 있다가 나갔다 온 듯
너의 얼굴은 한조각의 반가움도 없이 무심했다.
"왔어.?"
"어.."
주방까지 와서 고개를 빼꼼 나를 보더니
너는 뒤돌아서 네 방으로 들어간다.
"저.... 정국아, 차 한잔 할래..?
나 지금 커피한잔 마실까 했는데.."
그의 마음처럼 굳게 닫혀있는 방문에 대고
나는 물었다.
"됐어. 괜찮아"
쌀쌀맞은 너의 목소리가 나를 맞받아친다.
"애들 올 시간이라서, 금방 다시 내려갈 꺼야.."
내가 홀로 커피를 마시는 사이
너는 아이들의 유치원 차를 맞이하러
다시 현관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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