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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망개망개씌 구독자 수: 296 / 평점: 9.97 / 읽음 수: 3.2만 |
꿈의 연인 02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선수친 이 남자. 자기가 저질러놓고선, 기억을 하지 말라니. 도대체 이런 당당함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
""저기요···!""
이대로 그냥 보내줄 순 없지. 자기 할 말만 하고 그냥 가버리려는 듯한 그의 태도에, 더 호기심이 생겨버렸다. 어디서 본 사람은 맞는데, 어디서 봤던 사람인지가 가물가물했거든.
""제가 그쪽이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는데요, 아무튼 앞으로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 이런 짓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눈높이를 맞추며 나를 향해 상체를 기울이는 이 남자.
""알죠, 알아서 더 미안하지. 그래도 우리 이번 일은 비밀로 해요-""
미안하다는 한 마디가 이렇게 미안하다는 진심이 안 느껴진 적은 지금이 처음.
세상 여자 다 홀릴 것만 같은 눈빛으로, 자기 입술 엄지로 매만지며 웃는다.
지금 내가 만만하게 보여서 이렇게 넘어가려 하는 거 내 눈에 훤히 보이는데···
그래, 넘어가준다. 내가.
그는 그렇게 입고 있던 가죽 자켓 주머니에 손 찔러넣고선, 여유롭게 휘파람까지 불며 이 골목을 나서는데···.
""··· ···설마.""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가만 보다, 문득 떠오른 까마득한 옛 기억.
···그 울보 고딩 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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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발걸음을 따라 티 나지 않게 골목 밖으로 나오긴 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그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이미 없는 상태. 그 자리에 가만 서서 주변 둘러보니, 그제서야 눈에 띄는 익숙한 간판.
빨간 간판 위의 Destin이라 쓰여진 글씨는, 주변에서 비추는 네온 조명으로 환하게 빛났고_ 머지 않아 아, 저기가 내 숙소였지-라고 안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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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돌아와서는, 뭘 더 할 생각 없이 침대 위에 퍼질러졌을걸.
내가 길치든, 생판 처음 보는 사람에게 키스를 당했든 간에 열 시간 가까이 되는 비행으로 쌓인 피로를 이길 순 없었다는 거지. 그렇게, 깊은 수면을 취했고···
정신차리고 일어나보니 어느덧 오전 10시를 넘어가고 있는 시계.
""히이···!""
그냥 밖에서 돌아다니기만 해도 시간 없는 여행인데, 이 와중에 늦잠을 잔 하여주.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나오려다가 그만, 삐끗해서 바닥에 고꾸라지고 만다.
""아악···! 아야야...""
이것 말고도, 양치 하다가 사레 걸려서 치약 거품 목으로 다 넘긴 거, 눈썹 그리다가 심 부러져서 고생 좀 하고, 당고머리 하다가 고무줄 터지고···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전쟁.
그래도 가까스로 나올 때, 정상인(?)의 생김새를 완성한 여주는 그저 해맑다. 평일, 이 시간에 밖으로 나온다는 건 몇년 간의 하여주의 삶에서는 있을 수 없던 일이었거든.
나오자마자 바로 코끝을 자극시키는 달달구리한 빵 냄새에 여주 환장하지. 어젯밤에 맛보지 못했던 그 빵을 드디어 만날 수 있겠다 싶어 빵집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vente complète
Sold out
다 팔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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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각국의 언어로 삐뚤빼뚤하게 친절하게도 적혀있는 매진 안내문에 여주 눈을 의심.
얼마나 맛이 있으면 다 팔려. 아직 점심도 안 지났는데?
잠깐이나마 빵 향기 맡고 기대에 부풀어있던 여주는 푸우- 풍선 바람 빠지듯 눈빛에 희망 실종.
하는 수 없이 빵집을 지나쳐, 가방에 접어 넣어뒀던 지도를 펼치며 큰 길로 접어드는 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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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지도에만 시선을 두고, 좁은 보폭으로 한참을 전진하다 보니_ 어느새 도착지에 와있는 줄도 모르고,
""어어···?! 어!""
한 발 늦게 멈춰섰다간 가로등에 머리 박을 뻔한 여주. 간신히 숨 고르고 주변 둘러보더니, 한 걸음만 옮겨도 나오는 절로 입 막아지는 경치에- 바로 아날로그 카메라 손에 쥔다.
""···예술이네, 예술.""
찰칵, 소리와 함께 예쁜 사진 하나 건진 여주가 흡족해하며 건물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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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옅게 풍겨오는 라벤더 향에_ 주위를 좀 더 둘러보니 보이는 디퓨저.
그리고, 벽에 여러 점 전시되어 있는 미술 작품들. 마지막으로, 그 작품을 비추는 은은한 옐로우톤의 조명들까지.
저마다 조용히 감상 중인 사람들을 보자니, 여주는 절로 기분 좋은 웃음 나오지. 늘 자신에게는 멀게만 느껴졌던 사소한 경험이, 코 앞에 있었으니까.
""신기해···.""
여기는··· 막 그렇게 이름 알려진 화가들의 작품이 아닌, 무명의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무료로 제공하고,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곳.
누가 이런 장소를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예술을 감상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ㅎ
그림마다 저마다의 개성이 살아있는 걸 보니 무척이나 신기했다. 색깔들은 비슷해보여도,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붓의 질감이 나타난 것과 아닌 것, 여러 채색 방법 등등... 세부적인 요소가 눈에 띄었다.
그렇게 하나하나씩, 천천히 들여다보고 있는ㄷ…
""··· ···응?""
전혀 예상... 아니 예상할 수가 없었던, 그러니까 이 그림 속 풍경이 낯이 익어 한참을 그 앞에서 두 눈 크게 떠서 뭐지... 뭐지... 하고 있는데,
···이거 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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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무슨 그림이냐면... 어젯밤 그 남자로 인한 입맞춤 사고. 그때의 모습이 담겨져있는 그림이라니까. 안 믿기지? 응. 나도 안 믿겨. 무슨 소리인가 싶지?... 근데 이거 나야. 확신할 수 있는 이유가 하나 있는데...
내가 지내는 숙소 간판, 그 앞의 빵집을 비롯한_ 내가 지나가다 마주친 모든 건물이 그림에 있는 거야.
그리고... 그 건물들 사이, 빛이라고는 달빛 하나뿐인 골목 사이로 입 맞추고 있는 검은 형체의 한 사람과, 골목 벽에 등이 닿아있는 긴 머리의 여인. 그리고 그들로 인해 생긴 그림자까지. 대단히 고퀄리티를 자랑하는 그림.
""··· ···.""
당황···스러움보다는, 어... 이게 맞나 모르겠는데 신기한 감정이 앞섰다.
나도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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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길을 지나가던 화가가 그때 우리를 우연히 본 걸까?
아니면 이걸 그린 사람도 이런 경험(?)을 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화가의 로망···?
참 다양한 생각들이 머리를 헤집어가는 가운데, 그림이 끼워져있는 액자 틀 옆으로 시선을 옮기니 그제서야 보이는 작품명, 그리고 화가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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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by. unkn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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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한국어...? 프랑스 도심의 작품 전시관에, 난데없는 익숙한 언어의 등장이라니. 화가 이름은 익명이지만, 이 화가가 한국인인 건가... 그렇다면,
첫째, 이 사람은 나를 목격했다.
둘째, 나를 목격한 것이라면- 분명 저 주위에 살고 있겠지.
셋째, 작품 제목이 한국어... 오케이, 답 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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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위에 내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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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다른 작품들은 볼 필요 없겠다고 여긴 여주가, 희망에 벌써부터 들떠서 신난 발걸음으로 건물로부터 나온다. 거의 뭐, 동네 구석구석 뒤지며 한국인 찾아내고도 남을 태도.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배가 고프네.""
꼬르륵 꼬르륵 소리를 남발하는 자기 배 몇 번 어루만지더니, 주변을 둘러보며 먹을 것 찾기에 몰두.
그 와중에 길 건너 멀리 보이는 푸드 트럭 발견하고, 몽골인 뺨치는 시력 자랑하며 메뉴판을 읽더니···
""오, 와플이다-!""
한껏 신나서 뛰어 건너려는데, 마침 또 신호등은 파란 불. 나이스 타이밍, 속으로 외치며 오도도도 길 건너는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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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아아아아앙-, 크고 길게도 울리며 건너는 여주 옆에서 멈춰선 차량의 클랙슨 소리에 여주 얼음.
""Hey...!!! You don't have eyes?!""
[야, 너 눈 없어?]
아니 내가 파란 불에 건넜는데, 눈 없는 건 너겠지···!!!!!!! 뭐 이런 놈이 다 있ㅇ,라고 한 소리 하려는데_ 내 눈에도 보이는 운전자에게 표시된 파란 불.
이게 무슨.
곧이어 그 차 뒤로 오던 차들에게서도 클랙슨 소리 남발 중.
신호등이 뭐 이따구야···. 라는 생각도 잠시, 횡단보도 한 가운데에서 어버버... 당황해서 아무 것도 못 하고 있는데_
갑작스레 내 어깨 위로 닿는 누군가의 손. 내가 뒤돌기도 전에 나를 인도로 이끌고 가는데…
그 와중에 뒤에서 들려오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로 추정되는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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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까지 걸어와서, 뒤를 돌아보는데··· 웬 푸른 눈동자를 가진 금발 남성이 보이는 걸.
""···?""
누굴까 싶어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기도 잠시, 먼저 이상한 외계어로 말을 걸어오는 남자였으니...
-""Ça va? Vous n'êtes pas blessé?""
[괜찮아요? 안 다치셨습니까?]
""Umm... Sorry, but I can't speak French.""
[어... 저기 죄송한데, 제가 프랑스어를 못 해요.]
-""Oh, sorry. Are you okay?""
[아, 미안해요. 괜찮으세요?]
프랑스어 못 한다는 내 말에, 바로 영어로 말해주는 그. 세상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방금 처음 봤을 나를 어쩜 이리도 다정한 눈빛으로 봐 주는지...
고개를 끄덕이자 다행이라는 듯 환히 웃는 건 또 얼마나 예쁜지. 이 여행 15일 안에 내 결혼 상대를 찾는 건 어쩌면, 쉬운 일일지도.
역시 사람은 큰 물에서 놀아야 한댔는데. 응. 그거 맞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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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같아서는 그 남자랑 술 한잔이라도 하고 싶었지만(이미 상상 다 함.)
나도 내 할 일은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간단한 인사를 끝으로 강제 이별.
다음에 또 만나면 꼭 잡아야지.하며 와플 하나 사먹고 다짐했어. 오늘부터 프랑스어 공부 들어간다.
라는 내 다짐을 온 세상이 돕기라도 하는지, 길을 걸을 때마다 보이는 신이 빚은 듯한 갓벽한 피지컬을 동반한 이목구비가 대단히 잘 주차한 용안의 남자들···.
하여주 그저 감격 중.
""그래···. 인생 별 거 없다.""
안정적인 일자리 얻고 돈 많으면 뭐해. 사랑이 없으면 다 부질없어.
'5년 차 직장인 하여주, 유럽 여행 와서 그동안 얼어있던 심장이 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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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다리···.""
그렇게 길을 걷고 또 걸어, 지도를 따라가다보니_ 어느새 코앞에 펼쳐진 장관.두 시간 가까이 걸었을 걸.
택시 타면 될 것을, 남자들 한 명이라도 더 보겠다고 굳이 걸어온 고집 하나는 그 누구도 못 꺾을 듯.
그렇게 숨 고르기도 잠시, 여주 입 떡- 벌어지더니 바로 카메라부터 들지.
주말이라 그런지, 유난히 에펠탑으로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
여주는 그 속에서 넋 놓고 에펠탑 바라보다 문득- 에펠탑 너머로 보이는 배경이 마음에 들었는지 몇 번 더 찍어본다.
""하늘이 이렇게나 예쁠 일인가.""
주변 상가에 있던 카페를 비롯한 모든 음식점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은, 오후 네 시의 분위기에 꽤나 잘 젖어들었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사진을 찍어대기 바쁜 사람들, 저마다 사랑을 나누며 환히 웃는 연인들, 그리고 서로에게 짓궂게 장난치며 이 길을 뛰어다니는 아이들까지.
심지어는 바람의 흐름과 공기의 향기 조차도. 지금의 이 순간 자체가 너무나도 이루 말할 수 없이_ 감정이 북받쳐 오르기에 충분했다.
발걸음을 조금 더 옮겨, 에펠탑 가까이로 가보니까 보이는 나무 벤치.
다행히도 공석이었던 지라 가방 먼저 두고, 그 옆에 앉았다. 아무 말 없이 고개 들어보니, 에펠탑 사이사이로 보이는 하늘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내가 살면서 이런 느낌도 느껴볼 수 있구나, 싶어서.
왜일까. 그동안의 설움이 떠올라서? 그냥 이 순간이 너무나도 꿈만 같아서?
간만에 느껴보는 행복때문에? ······코 끝이 찡했다. 목은 점차 메어왔고, 가슴 한 쪽이 답답했다.
나도 이유를 모르겠는데, 이미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는 눈물에_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손으로 닦아내도, 자꾸만 나오는 눈물. 그냥 모르겠더라. 정확한 이유를.
급기야 나는 고개까지 떨구고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도 모르는 채로. 조금은 웃기네. 방금까지 남자에 환장하던 내가 이렇게 울고 있으니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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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는 사람은 좀 드문데,""
이와중에 떨군 고개 위에서 들려오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그제서야 쪽팔림을 느낀 내가 황급히 눈물 닦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아···. 진짜 말 못할 정도의 수치심...
""아, 죄송해요. 제가 좀 민폐였죠.""
그가 누군지도 확인 안 하고, 가방 챙기기에 바쁜데··· 갑작스레 내 옆자리에 앉으며 눈높이를 맞춰오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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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치기가 좀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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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팬플러스Fan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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