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 rlaalsrbb
★ 평점 : 9.4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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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괜히 다시 읽게 된다
그날 받아온 종이는 책상 위에 그대로였다.
버리지도 않았고, 정리하지도 않았다.
별 내용은 없었다.
손글씨, 한 문장.
그 사람이 발표 대본에 넣자고 건넸던 문장.
“생각이 많을수록, 말은 단순해지는 것 같아요.”
대사 하나일 뿐인데
그게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무 감정 없이 말했던 그 얼굴도.
묘하게 긴 침묵도.
이해하려고 한 건 아니었다.
그냥, 왜 그런 말이 그 사람 입에서 나왔을까
그 생각이 자꾸 멈춰섰다.
다음날 강의실에서 그를 다시 봤다.
그는 늘 그렇듯 조용했다.
교수의 말에도 별 반응 없었고,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가방을 내릴 때
그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잠깐 마주쳤고,
이번엔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가볍게 인사를 받았고,
그게 전부였다.
말은 없었다.
그런데 어쩐지,
그 침묵이 어색하지 않게 느껴졌다.
점심시간이 되자
단톡방에 톡이 하나 올라왔다.
김승민:
“자료 톤은 지금처럼 유지해도 될 것 같아요.
구성만 조금 바꿔서 버전 다시 만들게요.”
역시나 정리된 말.
짧고, 깔끔한 문장.
내가 뭘 더 붙일 것도 없이 끝났다.
근데 뭔가 이상했다.
내가 아무 일도 아닌 그 문장 하나를
종이에 옮겨 적고 있었다.
똑같은 손글씨는 아니었다.
그냥, 베끼듯.
“생각이 많을수록, 말은 단순해지는 것 같아요.”
나는 종이를 뒤집었다.
어떤 의미도 붙이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내 글씨가 먼저 알아버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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